2009년 09월 29일
Santiago de Compostela

마드리드에서 밤열차를 타고 9시간 걸려서 도착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산티아고는 요 몇년사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산티아고 가는길'의 최종 목적지이며 갈리시아 지방의 수도이다. 산티아고라는 이름은 가톨릭의 성인 성 야고보(영어로는 제임스, 스페인어로는 산티아고..)에서 따왔다. 콤포스텔라는 '평원'이라는 의미의 '캄푸스'와 '별'이라는 의미의 '스텔라'가 조합된 말로써..번역하자면..'별이 쏟아지는 평원'이라고 할까. 예쁜 이름이다. 그리고 그렇게 예쁜 이름처럼 산티아고라는 도시는 작고 평온하며 안정된 곳이었다. 레콩키스타 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오래된 도시는 구시가지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오래된 유럽 도시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대성당이 도시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스페인 남부, 프랑스 남부 등지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이 도착하면 저렇게 거대한 성당이 먼지투성이에 절룩거리는 순례자들을 맏이한다. 성당이 어찌나 거대한지, 그냥 서서 찍으면 제대로 찍히지 않는다. 그래서 바닥에 드러누워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니면, 그냥 배낭에 등을 기대고 누워서 무아지경속에 성당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순례자들은 대성당에서 펼쳐지는 순례자를 위한 미사에 참여하는데, 이때 이 성당의 명물인 botafumeiro(우리말로 하면..'연기뿜어대는 것' 정도 되는데..그냥 편의상 '거대향로'라 불렀음..)가 천장을 향해 솟구치며 좌우운동을 하는 것을 볼수 있다. 그와 함께 제대 저쪽 안쪽에 자리잡은 야고보상을 껴안기 위해 야고보 상 어깨너머로 쑥쑥 뻗어나오는 사람들의 팔도 볼수 있다. 나도 그 조각상을 껴안아봤는데 어깨가 생각보다 넓었고, 뭣보다 쇠냄새가 진동을 해서 도저히 껴안을수 없었다. 우웩.


원래 성당 2층까지 꽉 메운 순례자들의 땀냄새와 악취를 중화시키기 위해 사용했다는 거대향로는 현재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나와 동생 양쪽에 앉은 순례자들의 살인적인 겨드랑이 냄새가 향로가 한번 왔다갔다 할때마다 사라졌다. 미사내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어야 했는데 처음으로 고개를 내릴수 있었다.
향로가 움직이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아저씨들이 굵은 밧줄을 붙잡고 힘있게 당겼다 풀었다를 반복하면 향로는 남쪽과 북쪽 통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서정적인 오르간 반주가 시작되면 주송자이신 수녀님의 잔잔한 노래가 울려퍼지고 모든 사람들은 숨죽이고 향로의 움직임을 바라본다. 오직 사람들이 머리윗쪽으로 한껏 뻗쳐올린 카메라들만이 동영상 촬영을 바쁘게 하고 있을뿐. 그저 향로가 움직이는 것일 뿐인데, 뭐라 말할수 없는 벅찬 느낌이 올라왔다. 노래가 진행될수록 향로는 점점 위로 솟구쳐서 거의 천장에 닿을듯이 높이 올라간다. 그럴때마다 사람들이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때 향로는 점점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하고 점점 속도가 줄어들면 아저씨 한분이 다가와서 예술적으로 핑그르르 돌면서 향로를 붙잡음과 동시에 노래는 끝나고 사람들의 박수가 터져나온다(이 모든 과정을 동영상으로 남기겠다며 디카를 들고 설쳤는데 너무 흥분한 나머지 셔터를 누르지 않아 향로가 움직이는 모습 촬영 실패.-_- 다행히 동생이 잘 찍었음).
향로가 성당 천장까지 올라갈수 있을정도로 대성당은 정말 컸다.

향로가 지나가는 통로쪽.

제대뒷쪽 장식.

향로를 움직이게하는 도르래.
세비야의 대성당은 이것보다 더 크다고 하니 쩝.
개인적으로는 제대 주변 소성전들이 맘에 들었다.

대성당에는 성당의 명물중의 하나라 할수 있는 '영광의 문'을 전시한 박물관이 있는데,
돈내고 관람하는거라서 이걸 볼까말까 무척 고민했더랬다.
그런데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웬 할머니 한분이 홀연히 나타나시더니
박물관 도록을 좍 펼쳐서 보여주시면서 조각품을 일일이 다 설명해주시는게 아닌가.
이게 왠일.
설마 소매치기 나타날까봐 가방 꽉 쥐고 얘기를 들었는데,
소매치기는 안나타났고, 마치 박물관을 본듯한 착각에 빠지면서 기억이 재구성 되는것 같았다.
사실, 향로 움직이는 것 까지 봤으면 산티아고에서 할일은 다 끝났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산티아고는 오래된 도시의 미덕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도시였다.

오래된 골목들과 오래된 건물들, 그리고 성당들, 도시 곳곳에 흩어진 대학 건물들. 분수, 작은 광장, 작은 카페..지도는 고이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카메라와 물통들고 정처없이 동네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어차피 어느 방향으로 가나 대성당으로 이어진다는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무작정 걸었다.

걷다가 배고파지면..하몬과 초리소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먹고..

또 걷고..

골목마다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렇게 사흘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내를 이리저리 걸었다.

대성당 외부의 작은 조각상.

산 피나리오 수도원의 성당 정문 조각. 이 성당은 입장 시간이 제한되어 있고, 입장료를 내야 박물관을 포함한 전체 내부를 관람할수 있는데, 위압적인 분위기의 바로크식 장식들로 가득찬 제대가 압권이다. 원래 산티아고 대성당에 있던 성가대석이 이 성당에 보존되어 있다. 베네딕도회 수사들의 수도원이었던 건물은 현재 박물관인데, 성물, 제의, 보석, 그림, 조각, 동물 박제(수많은 벌새 박제가 인상적이다), 과학 실험 도구 등이 전시되어있는데, 수도원 약국의 모습을 보존해서 전시한 것이 볼만하다.

산 파이오 데 안테알타레스 수도원에서 있었던 베네딕도회 소속 수녀님들의 저녁기도는 감동적이었다.
걸어서 둘러보기 참 좋은 도시이다. 이렇게 열심히 걸어다니며 본 도시는 이제까지 한번도 없었다. 동생하고 단둘이 한국 밖으로 나온것도 처음이었고. 이것저것 걱정 많이 했는데,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적시에 도움의 손길이 뻗쳐와서 무사히 지낼수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에 대한 인상을 재구성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모두가 다 수다스럽고 이기적인 사람들인것은 아니라는 것.
나중에 몇몇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다시 바꿔야 했지만, 대체로 이 도시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성지'라는 특수성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by | 2009/09/29 18:45 | 기쁨 | 덧글(0)




